갑질.
계약서상에서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당사자와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상대를 가리키는 갑을(甲乙) 관계에서 ‘갑’에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사인 ‘질’을 붙여 만든 말이다.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너무나 많고 잦아 갑질 뉴스들이 이젠 새롭지도 않다. 경직돼 있는 상하관계가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치부다. 이 단어는 우월주의에서 시작됐다. 이 행태는 은연중 계급사회를 형성했고 그것이 묵인돼 어느덧 권력으로 고착화했다. 갑질은 그 ‘권력’의 행사다.

지난달 29일 KBS ‘제보자들’에서 ‘6년간 아파트 관리소장이 5번 바뀐 이유는’이라는 제목의 방송이 있었다. 한 아파트 입주민의 민원 때문에 지난 6년간 그만둔 관리소장만 5명이고, 특히 전임소장은 부임 3개월 만에 사직서를 낼 만큼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각했다는 내용 등이다.

그 내용의 진위, 시비 등은 차치하고 아파트 관련한 불미스런 내용이 또다시 공중파를 탔다는 게 안타깝다. 방송에서 해당 입주민은  “주민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지만 모든 입주민들이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는다.

이 방송을 본 어떤 소장은 ‘우리 아파트는 2년 동안 4명의 관리소장이  교체됐다’고 하고, 어떤 곳은 3년간 7번 바뀐 사례도 있다고 말한다. 이유야 제각각이겠지만 아파트 관리 분야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 같아 씁쓸하다.

방송이 나온 후, 대한주택관리사협회는 아파트 종사자를 상대로 한 입주민의 갑질 행태를 비판하며, 실효성 있는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주관협은 “이제는 관리소장을 포함한 종사자도 아파트 생활공동체를 구성하는 한 구성축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종속적 인식에서 벗어나 더불어 생활한다는 상생의식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갑질의 문제’는 그렇게나 자주, 반복하며 사회적으로 이슈화되고 경종을 울렸지만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극단적인 사례들은 아프다. 지난해 여름, 한 관리소장이 입주자대표회의 간부와의 갈등을 암시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입주민의 괴롭힘으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 아파트 경비원이 분신자살한 일도 있다.

유독 아파트와 관련돼 ‘갑질’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자주 거론되는 걸까. 통상적으로 조직사회에는 계급이 있고 그 틀에서 질서가 이뤄진다. 그러나 그것은 조직 내의 계급이자 위계질서이지 인권유린까지 용인되는 계급은 아니다. 아파트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들은 대개 고질적 병폐 수준이다.

이런 문화를 안고 어떻게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지향할 수 있겠나. 역지사지(易地思之),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관리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도 자기가 살고 있는 아파트 등에서는 입주민들이다. 단지 ‘관리비’를 낸다는 이유로 그렇게 과한 행동을 한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주관협의 성명처럼 관리사무소는 입주민 전체의 권익 보호와 생활 편익 향상을 위해 존재하는 기구다. 그 종사자들은 입주민들의 안녕과 편리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봉급을 위해 노동을 파는 것이지, 인격까지 파는 것은 아니다.

이번 기회에 우리사회에 만연된 갑질 문화, 그중에서도 삶의 터전인 아파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런 것들이 바뀌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아파트관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