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근시트 하자 인정 판결에 대한 소고

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변호사는 많이 일하고(Work), 많이 걷고(Walk), 많이 쓴다(Write)고 해서 ‘3W 직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기자들이 기사 마감에 쫓기듯 변호사들은 변론준비 마감에 쫓기며 서면을 쓴다. 서면의 종류는 소장, 답변서, 준비서면, 각종 증거 신청서나 의견서, 변론요지서 등등 다양한 제목이 붙지만 의뢰인을 위해 법원 또는 상대방을 설득한다는 동일한 목적으로 쓰는 것들이다.

간혹 형사사건 변호인의견서에는 양형에 참작해달라며 눈물로 호소하는 내용이 들어가기도 하고, 이혼사건 서면처럼 법리보다는 ‘사랑과 전쟁’을 방불케 하는 스토리가 드러나도록 써야 하는 것들도 있지만 대체로 감정을 움직이기보다는 논리적인 설득이 먼저인 내용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변호사의 서면은 소소한 감동을 주는 에세이나 사실관계가 왜곡된 소설이 돼서는 안 되고,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게 법리를 구성해 의뢰인에게 유리한 결말을 도출하는 것이 최우선이 된다. 변호사의 글쓰기는 예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의뢰인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변호사가 변론 준비를 위해 여러 논문이나 판례를 검색할 때의 목적 역시 의뢰인을 위한 것인지 여부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의뢰인에게 최대한 유리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백방으로 방법을 찾다가 기가 막힌 법리를 구성해 놓은 판결문이나 논문이라도 찾게 되면 그야말로 노다지 캔 심마니 심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판결이나 논문을 인용해 유려하게 법리를 구성하며 마치 자신이 개발하기라도 한 법리인 것처럼 뿌듯해한다.

최초로 무엇인가를 발견했거나 여러 가지 연구와 노력으로 무엇인가를 개발했다면 응당 그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 것을 제도적으로도 보장하기 위해 특허니 저작권이니 하는 제도를 두는 것이리라. 그러나 변호사들이 쓰는 서면은 예술이 아니기 때문일까? 변호사 업계에서는 누가 가장 먼저 그런 법리를 개발했는지, 누가 가장 먼저 그런 논리로 승소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보다는 그저 가져가기 바쁜 것 같다.

내가 소속돼 있는 법무법인은 공동주택이나 집합건물의 하자 소송을 주력으로 하는 팀이다 보니 하자 항목에 대한 기술적 소양도 상당 부분 필요하다. 하자소송을 진행할 때 대부분은 하자진단 전문업체에서 적출한 하자 항목들을 그대로 원용해 하자를 주장하면서 하자보수에 갈음한 손해배상청구를 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 우리 팀에서 기존에는 하자 항목으로 적출되지 않았던 새로운 하자, ‘방근시트 미시공’ 항목을 발견해 하자감정을 신청하고, 결국 승소 판결을 받았다(수원지방법원 2017. 9. 19. 선고 2013가합 204153 판결). 이 방근시트 미시공 항목은 건축기사 자격을 갖춰 기술적 소양이 뛰어난 우리 팀 변호사의 활약과 노력으로 발견한 새로운 하자 항목이었다. 지하주차장 상부에 조경을 조성할 때 방수조치 외에 방근 조치도 해야 한다는 점을 발견하고, ‘방근시트 미시공’을 하자로 주장해 최초로 인정받은 것이다. 최초란 늘 그런 것이겠지만 법원에서 감정을 채택받기도 쉽지 않았고, 감정인조차 생소한 항목이었기 때문에 하자로 인정받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법원의 인용판결이 선고되기까지 단 한 가지도 쉬운 것이 없었다. 이 판결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는 그 과정을 모두 겪은 우리만이 알 것이다. 의미 있는 이 판결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여러 언론사에서 방근시트 미시공 하자 관련 보도가 쏟아졌다. 기쁨도 잠시 마치 방근시트 하자 항목을 자기들이 처음 발견하고 인정받은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벌써 나타났다.

방근시트 미시공 하자 항목을 다른 변호사는 하자로 주장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적어도 이 하자를 처음 발견하고, 처음 하자로 인정받은 것이 어디인지는 속이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비록 ‘예술’은 아닌 변호사의 서면이라 하더라도 ‘최초’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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