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지법 고양지원 판결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자신과 적대적인 동대표들이 참여한 입주자대표회의 회의 내용을 몰래 녹음한 관리소장에게 법원이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하고 자격정지를 선고했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김창형 부장판사)는 최근 입주자대표회의 회의를 몰래 녹음한 혐의로 기소된 경기 고양시 A아파트 관리소장 B씨에 대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선고심에서 “피고인 B씨를 징역 6월 및 자격정지 1년에 처하고 1년간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관리소장 B씨는 2015년 9월 주민회의실에서 입주자대표회장 C씨가 긴급임시회의를 진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회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몰래 회의장 책상 위에 있는 비닐봉지 안에 소형녹음기를 설치해 회의 내용을 녹음했다.

그러나 B씨는 “긴급임시회의는 공개된 회의”라고 주장하며 혐의 사실을 부인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아파트 관리규약은 관리주체가 대표회의에게 넘겨받은 회의록과 회의 결과를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회의에서 작성된 회의록과 회의를 통해 도출된 결과를 공개하라는 취지일 뿐 회의에서 이뤄진 대화 내용을 그대로 공개하라는 취지로 볼 수 없다”며 대표회의가 회의 내용을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관리규약은 ‘회의 개최 시 녹화 및 녹음해 입주자에게 중계할 수 있다’고 정해 회의 내용을 반드시 입주자 등에게 중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중계할 수 있다는 것에 불과하고 대표회의는 긴급임시회의 중계를 결정한 바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이 사건 긴급임시회의는 B씨가 직원으로 소속돼 있는 관리업체와 재계약을 할 것인지와 B씨가 타 단지에 비해 관리비를 과다하게 부과하고 있다며 이를 절감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회의에 참석한 동대표들은 회의 전날 ‘B씨의 임기가 기간만료로 종료됐음에도 계속해 업무를 본다’는 이유로 B씨와 다투고 회의 후에 B씨를 소장 직에서 해임시키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B씨도 이 사건 긴급임시회의가 자신을 내쫓기 위한 회의였다고 진술한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 회의는 피고인 B씨를 배제하고 진행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며 “회의에 참석한 동대표들은 이 사건 회의 이전 회의에서 ‘회의 개최 시 각자 회의내용을 녹음하자’고 합의했으나 이러한 합의가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채 비밀리에 녹음하는 것까지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한 “피고인 B씨는 회의가 아닌 자신과 적대적인 동대표들의 대화를 녹음해 입주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녹음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피고인 B씨에게 회의 내용을 입주민들에게 공개할 법령상 의무가 있다거나 입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이 관리소장의 업무라고 해도 이는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회의 이전에 동대표들 사이에 각자 회의 내용을 녹음하자는 합의가 있어 굳이 비밀녹음을 하지 않더라도 피고인 B씨에게 우호적인 다른 동대표들을 통해 회의 내용을 확인하거나 녹음 내용을 확보할 수 있었던 점 ▲피고인 B씨는 회의 당시 자신에게 우호적인 동대표들의 요청으로 회의를 녹음한다는 사실을 회의 참여 동대표에게 알려줄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은 점 ▲회의 이전에 우호적인 동대표들의 회의불참석확인서를 받아 회의가 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해 개최될 수 없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반대세력 동대표들의 대화를 비밀녹음하려고 한 점 등에 비춰 정당행위로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재판부는 회의 직후 비밀녹음 사실이 발각돼 녹음 내용이 외부에 유출되지는 않은 점 등을 참작, “징역 6월의 형의 집행을 1년간 유예하고 자격정지 1년에 처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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