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산하 김미란 변호사

공동주택이나 집합건물과 관련한 분쟁을 주로 다루다보니 관리소장들로부터 전화를 많이 받는다. 소소한 민원사항에 대한 문의부터 최근 판례나 유권해석을 살펴 답변을 할 필요가 있는 것까지 내용도 다양하다. 그러나 어떤 문의건 간에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기까지 그들이 일선에서 겪었을 마음고생만큼은 무게가 비슷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간혹 그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너무 무거운 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얼마 전 지친 얼굴의 관리소장 한 분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가 근무하고 있는 단지의 지하주차장에서 주차된 차량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났고, 스프링클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바람에 피해가 꽤 컸다는 것이다. 그리도 당연한 수순처럼 그는 소방시설 설치 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소방시설법’이라 약칭)에 따른 소방시설의 유지·관리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그는 과태료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을 한 후 1심에서 여러 가지 주장을 했지만 법원은 과태료 금액을 조금 감액했을 뿐 과실은 인정된다고 봤다.

과태료 금액 자체는 그리 큰 것이 아니었지만, 이를 다투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결국 과태료를 받을 정도로 소방시설 유지·관리에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하게 되는 것이고, 추후 민사소송에 휘말릴 염려가 컸다. 그는 근심이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일전에도 유사한 사건을 다룬 적이 있었다. 그 사건은 방화로 인해 지하주차장에서 화재가 난 것이었는데 스프링클러 미작동으로 피해가 컸던 것이 이 사건과 비슷했다. 대체로 그렇듯이 잘못을 한 방화범에게는 손해배상을 할 만한 충분한 자력이 없었고, 결국 보험사가 보험처리를 한 후 아파트 관리주체에게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관리주체가 관리상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다면서 구상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해당 사건은 과태료 처분조차 없었던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1심 법원은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아마 1심에서 변호사 없이 소송을 진행하면서 법리적인 부분에 대한 주장을 상세하게 하지 못한 탓이 컸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1심에서 패소한 사건을 항소심부터 맡게 됐는데,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사고와 관련해 관리주체가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와 직결되는 사안이었기 때문에 주택관리업계에서 핫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중차대한 사건이었다. 막중한 책임감으로 소송을 수행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결과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승소였다. 스프링클러가 작동되지 않은 것은 관리주체의 시설 유지 및 관리업무 소홀 때문이 아니라 건축물의 구조적인 부분에 의해 교차회로가 작동되지 않았을 가능성에 기인한 것인 점 등이 인정된 것이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15. 2. 6. 선고 2014나52273).

이번 사건 역시 일부 감액이 있었을 뿐 과태료 처분 자체는 정당하게 본 1심 결정이 있었다. 1심 법원은 스프링클러의 소화수가 정상적으로 방수되지 않은 결과만을 근거로 과실을 인정했는데 이는 사실상 무과실 책임을 인정한 꼴이 아닐 수 없었다. 고의 또는 과실이 없는 질서위반행위는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다는 점(질서위반행위규제법 제7조), 소방시설법상의 과태료 부과 요건 미충족 등 여러모로 문제가 있는 결정이었다. 관리소장이 챙겨준 각종 자료와 상담 내용, 1심 법원의 결정 이유, 관련 법령을 쭉 살피면서 항고이유서를 쓰는데 점점 신이 났다. 이거 잘 하면 뒤집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1심 결정을 취소하고, 과태료에 처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항고심 결정이 났다(대전지방법원 2017. 8. 23. 결정 2017라 10111). 뛸 듯이 기쁜 마음으로 의뢰인에게 결과를 알려드렸다. 그의 목소리에서 안도의 한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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