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법 결정

“‘사무 처리 위탁’땐 위임 해당” 판시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아파트 경비용역계약의 법적 성질이 도급계약인지 위임계약인지를 두고 지속적인 갈등이 발생되고 있다. 경비업법은 경비업을 도급으로 정하고 있지만, 위탁관리업체 또는 입주자대표회의와 경비용역업체 사이에 계약을 체결하는 아파트의 경우 도급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법원의 판결이 엇갈려 논란이 된 바 있다(본지 1159호 2017년 7월 26일자 게재). 이 가운데 최근 경비용역계약이 도급적 요소보다는 ‘일정한 사무 처리의 위탁’이라는 위임적 요소가 더 강한 경우 위임계약으로 봐야 한다는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대전지방법원 제21민사부(재판장 문보경 부장판사)는 대전시 A아파트에 용역을 제공하는 경비용역업체 B사가 이 아파트 위탁관리업체 C사를 상대로 제기한 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사건에서 기각 결정을 내렸다.

경비용역업체 B사는 A아파트 관리업체 C사와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2월까지 2년간 경비업무를 수행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으나, 새로 부임한 관리소장 D씨는 지난 4월 관리소장 명의로 B사에게 계약 해지통지를 했다.

이에 B사는 “관리소장 D씨는 관리업체 C사로부터 계약 해지 권한을 받지 않았음에도 계약 해지 권한이 있는 것처럼 관리소장 명의로 해지통지를 했고 또 계약이 규정하고 있는 해지사유가 존재하지 않아 해지통지는 무효”라며 “C사는 이 사건 계약이 위임계약이므로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나, 이 사건 계약은 도급계약이므로 계약에 정한 사유가 있어야만 해지할 수 있다”는 이유로 C사를 상대로 가처분 신청을 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우선 이 사건 계약이 도급계약인지, 위임계약인지에 대한 판단을 했다.

경비업법은 경비업을 ‘각종 경비업무를 도급받아 행하는 영업’이라고 규정하는 등 전반적으로 경비업을 도급으로 파악하고 있고 이 사건 계약도 ‘경비도급계약’, ‘도급인’, ‘수급인’, ‘하도급’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건 계약의 법적 성질은 당사자가 붙인 계약서의 명칭이나 형식, 용어 등에 구애될 것이 아니라 계약내용의 실질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데, 이 사건 계약은 일부 도급계약적 요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C사가 B사에게 경비업무를 위탁하고 B사가 이를 승낙한 계약으로 당사자 쌍방의 특별한 대인적 신뢰관계를 기초로 하는 위임계약”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계약의 목적이 ‘B사가 경비대상 시설 및 장소에 대해 도난, 화재, 기타 혼잡 등으로 인한 위해발생을 방지’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지만 B사로서는 그 목적달성 여부를 불문하고 경비업무를 수행하면 매달 일정한 보수를 받을 수 있어 ‘어떠한 일의 완성’이라는 도급적 요소보다는 ‘일정한 사무 처리의 위탁’이라는 위임적 요소가 더 강하다고 봤다.

이 사건 계약에 따르면 B사는 경비업무 수행을 위해 일정한 자격을 갖춘 자를 경비원으로 배치해야 하고 경비원의 근무태만 등이 있는 경우 경비원을 교체해야 한다. 위탁관리업체 C사는 계약에서 B사가 고용해야 할 경비원의 인원수, 근무시간도 정하고 있다.

이에 재판부는 “이 사건 계약은 ‘당사자 사이의 특별한 신뢰관계’를 요구하고 있고 일정한 일의 완성을 위해 어떠한 노무를 어떻게 제공하는지가 수급인에게 전적으로 맡겨져 있는 도급계약과 달리 C사가 B사에게 경비업무의 수행방법 등에 관해 광범위한 지도·감독을 행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위임계약상 수임인의 복임권 제한과 유사하게 B사는 C사의 승인 없이 계약상 권리·의무를 제3자에게 양도하거나 계약상 업무를 하도급 할 수 없고 B사는 소속 경비원에게 경비 상황보고서를 작성하게 하면서 필요시 C사에게 통보해야 하며,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경비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해야 해 이는 수임인의 보고의무, 선관의무 등의 내용과 유사하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 사건 계약은 C사가 주택관리업자의 지위에서 위탁받은 공동주택관리법상 업무 중 ‘공동주택 단지 안의 경비’ 업무에 대해 체결된 것으로 공동주택관리법 제52조에서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선정하는 주택관리업자의 지위에 관해 민법 중 위임에 관한 규정을 준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해지통지 효력에 대해서는 “관리소장 D씨가 C사로부터 관리주체의 업무와 관련된 사항의 대리권을 수여받았고 계약 당사자는 B사와 C사이므로 해지통지는 D씨가 C사의 대리인 지위에서 한 것”이라며 “해지통지는 보조적 상행위에 해당해 상행위의 대리인인 D씨가 C사를 위한 것임을 표시하지 않았어도 그 행위는 C사에 대해 효력이 있다”고 명시했다.

상법에 따르면 상인인 회사가 영업을 위해 하는 행위는 상행위고 상행위의 대리인이 회사를 위한 것임을 표시하지 않아도 그 행위는 회사에게 효력이 있다.

또 “위임계약은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어 위임계약인 이 사건 계약은 해지통지에 의해 적법하게 해지됐으므로, B사는 계약에 기해 경비업무를 수행할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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