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아파트 경비원 근무환경 이대로 좋은가

경비실 에어컨 설치 논란
“휴게실 무의미” 지적도

경기도의 한 아파트 경비실에 2대의 선풍기가 설치돼 있다. <고경희 기자>

최근 아파트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등 경비원의 근로환경과 처우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달 서울 중랑구 A아파트 우편함에서 ‘경비실에 에어컨 설치를 반대합시다’라는 제목의 전단이 발견됐다. 전단에는 추진자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관리비가 오른다. 공기가 오염된다. 지구가 뜨거워지면 주민화합이 되지 않는다. 큰 단지도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해 주지 않는다’는 등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반대하는 이유가 적혀 있었다. A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는 이에 앞서 경비실 에어컨 설치에 대한 입주민 투표를 진행해 과반수 동의를 얻었으나 일부 입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이에 한 입주민은 아파트 게시판에 ‘추진자 일동께 드리는 글’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해 에어컨 설치에 반대하는 ‘추진자 일동’을 비판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에는 수원시 B아파트의 경비실에 설치된 에어컨에 대해 동대표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설치된 지 한 달 만에 떼어내 비난을 받는 등 경비실 에어컨 설치 논란은 이전부터 계속돼 왔다.

에어컨이 설치되더라도 무용지물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2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아파트 도색업체가 경비실에 단 에어컨이 일부 동대표들의 민원에 의해 비닐로 싸여 있다는 글이 올라와 네티즌들의 공분을 샀다.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 근무하는 경비원 C씨는 “경비실에 에어컨이 설치돼 있지 않아 한 여름에도 선풍기로 버티고 있지만 만약 에어컨이 설치돼 있더라도 입주민들의 눈치가 보여 이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경비원 C씨는 단지 내에 경비원 휴게실이 마련돼 있으나 형식적인 공간일 뿐 실제로 이용하기는 어렵다고 경비원 휴게실 문제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C씨는 “휴게시간에도 택배보관 등 업무를 할 수 밖에 없어 경비실을 비울 수 없다”며 “이런 와중에 휴게실도 멀리 있어 근무여건과 맞지 않는데 언제 이용하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C씨를 포함해 인근 단지 경비원들은 휴게실이 따로 마련돼 있어도 경비실을 휴게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상태였다.

희망제작소 임주환 객원연구위원(변호사)은 “아파트 경비원은 감시·단속직이라는 이름 때문에 임금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사실 택배수령 등의 업무는 필수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입주민의 편의를 위한 배려차원의 업무임에도 휴게공간 문제에 대해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은 사용자로서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명목상의 휴게시간을 늘리고 휴게공간을 무늬만 확장하기도 하는데 사용자들은 법적인 문제를 떠나 아파트라는 공동체의 한 구성원인 경비원의 처우와 근로환경을 개선하는데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아파트 경비원은 입주민 편의를 위해 다양한 업무를 하는 공동체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어 입주민들이 경비원의 처우개선 등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문제가 공론화되는 것 자체가 대다수 입주민과 시민들이 경비원 처우에 불만이 있기 때문에 이뤄진 것으로, 이를 기점으로 어떻게 경비원의 처우나 근로환경을 개선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반면, 경비원 에어컨 설치 반대 등이 논란이 된 가운데 몇몇 단지에서는 입주민이 경비실에 에어컨을 기증한 사례가 잇따라 나오면서 훈훈함을 주고 있다.

서울시 한 아파트 입주민은 본인과 치매를 앓던 아내를 살뜰히 챙겨준 경비원들을 위해 경비실에 에어컨 5대를 기증했다. 이에 이 아파트는 주민회의를 열어 미화원 휴게소에도 에어컨을 설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원도에 위치한 또 다른 단지에서는 설치비·전기료 부담에도 모든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를 위해 이 단지는 입주민들에게 안내문을 돌려 이해를 구했다. 아울러 경기 수원시 아파트는 폭염에 고통을 겪을 경비원을 위해 도보 순찰제를 폐지하고 근무용 경비 스쿠터를 제공하기도 했다.

지자체 차원에서도 경비원의 처우 및 근로환경 개선에 나서고 있다. 충남 아산시는 ‘아산시 아파트 경비원의 고용유지 및 창출 촉진을 위한 특별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경비실 냉·난방기 설치, 경비원 전용 휴게실을 정비하는 등 경비원의 고용유지 및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을 한 단지에 대해 고용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울산 북구는 지난 5월 관내 아파트 13개 단지 입주자대표회의와 함께 ‘노사민정이 함께 하는 행복한 아파트’ 협약을 체결하는 등 경비원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 이같이 지자체와 입주민들이 경비원의 처우 및 근로환경 개선에 목소리를 내고 있어 개선에 대한 추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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