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
등급은 구별을 위한 것이다. 높고 낮음이나 좋고 나쁨 따위의 차이를 여러 층으로 구분한 ‘단계’다. 꼭 가치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등급제는 정말 다양하다. 옛날에는 신분등급이 있었으며, 학교 다닐 때는 내신등급을 경험하기도 했고 군 입대를 위해 신체등급을 받았다. 은행 거래를 위한 신용등급, 영화관 상영에 따른 개봉등급 등 많은 등급제가 있다.

지난해 초 서울시에서 ‘아파트 관리품질 등급제’ 시행 발표 때 공동주택 관리 분야에선 갸우뚱했다. 아파트 관리품질에 등급제를 도입한다니, 누가 평가를 하며, 어떤 기준으로 할 것이며, 왜 필요한가와 당장 집값에 영향을 줄 게 뻔한데 객관적으로 평가 가능하겠냐는 등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그런 관리 분야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제도 도입을 강행했다.

아파트 관리품질 등급제는 아파트 단지별 관리 실태를 평가해 3등급으로 나눠 등급을 확정하고 우수단지 공개 및 인증서를 수여하는 것이다. 아파트 관리의 전문성·투명성을 높이고 아파트 관리품질 증진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서울시가 지자체 중 가장 먼저 도입했다. 지난해에는 1500세대 이상 의무관리단지 95개 중 17개 우수단지를 선정해 인증서를 수여했다.

서울시의 발표에 따르면 아파트 관리품질 등급제는 투명하고, 안전하고, 똑똑하며, 조화롭고, 모범적인 아파트 관리를 지향한다. 평가분야는 일반관리, 건축, 기술, 회계, 공동체생활 등 5개 분야 149개 항목으로 평가 내용은 ▲관리과정·회계리스크·정보공개 등(50개 항목) ▲안전 및 유지관리·장기수선계획 등(41개 항목) ▲조직운영·교육·행정지원 등(29개 항목) ▲갈등관리·노동자 처우·공동체 활성화 등(22개 항목) ▲행정기관 신고사항 적정 여부 등(7개 항목)이다.

‘아파트 관리품질 등급제’ 시행 2년차를 맞아 서울시는 지난해 1500세대 이상에서 올해는 1000세대 이상 단지로 확대 시행 한다고 밝혔다. 평가단도 확대·보강하고 경비노동자에 대한 고용유지 등에 관한 평가항목도 추가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아파트 관리품질 등급제는 입주민들의 관심도 제고와 참여 확산을 유도해 아파트 관리의 투명성 및 효율성을 강화시킬 수 있는 제도”라고 강조한다. 서울시는 그간 부적정한 관리비 집행 등 적발 위주의 실태조사에서 탈피, 아파트 관리의 신뢰성을 회복하는 제도적 기반이 조성되게 함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선진 관리문화의 도입·정착보다는 당시 ‘비리의 온상’으로 여론몰이했던 것에서의 탈출에 방점이 있었다고 많은 이들이 봤다. 계몽주의적이면서도 책임모면의 성격이 강했던 것으로 비쳐졌다.

서울시의 발표·기대와 달리 제도 시행 후에도 관리업계의 불만이 적지 않다. 업계에서는 ‘아파트 관리’라는 특수하고 전문적인 분야에 대해 건축, 회계 등 전문가들이 각 아파트의 개별 사정을 모른 채 표면적, 전반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라고 주장한다.

현장에서는 현실성 없는 정책이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평가를 준비하던 한 관리소장은 “행정관청에 민원이 많이 접수되면 등급이 내려간다”며 “제도 도입의 진짜 이유가 뭐냐”고 고개를 저었다. 입주민들도 이벤트성 아니냐며 불만을 나타내기도 한다.

서울시가 ‘맑은 아파트 만들기’를 위한 가치를 입주민들과 관리 분야 관계자들과 공유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이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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