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 판결

[아파트관리신문=고경희 기자] 아파트 관리직원이 업무 중 추락사고로 장애를 입어 우울감을 호소하다 자살했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돼 근로복지공단이 유족에게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12부(재판장 장순욱 부장판사)는 업무 중 추락사고로 장애 입어 우울증으로 사망한 A아파트 관리직원 B씨의 아내 C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피고 근로복지공단이 C씨에게 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다”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관리직원 B씨는 2014년 10월 사다리와 장대 등을 이용해 단지 내 모과나무 열매를 채취하던 중 균형을 잃고 2m 30㎝ 높이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B씨는 요추3번 방출성 골절 및 척수신경손상을 입어 병원에서 척추후궁절제술 등을 받았으나 마미총증후군, 신경인성방광, 신경인성장, 변실금 등의 후유증(이하 ‘이 사건 상병’)이 발생했다.

B씨는 재활치료를 받았으나 대소변 장애는 크게 호전되지 않아 항상 기저귀를 차고 있었고 2015년 2월 외과에 방문해 담당의사로부터 ‘항문의 기능이 거의 상실돼 항문기계를 삽입해 생활해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후 B씨는 A아파트 관리소장과의 전화통화에서 ‘너무 고통스러워 죽고 싶다. 유서는 이미 써놓았다’고 말했고 아내인 C씨에게 유서를 보여주면서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다. 결국 B씨는 2015년 5월 병원에서 목을 매 자살한 채 발견됐다.

B씨의 아내 C씨는 B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2015년 12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공단은 지난해 1월 ‘B씨가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해된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결정을 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2항과 같은 법 시행령 36조에 따르면 근로자의 고의·자해해위 또는 이로 인해 발생한 사망은 원칙적으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면서도 ▲업무상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근로자가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해 사망한 경우 ▲업무상 재해로 요양 중인 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해 사망에 이른 경우 ▲근로자가 그 밖에 업무상 사유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그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근로자의 사망이 업무상 질병으로 요양 중 자살해 이뤄진 경우 당초 업무상 재해인 질병에 기인해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 상태에 빠져 자살이 이뤄진 때에는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B씨가 비록 자살로 사망했더라도 업무상 재해인 이 사건 상병으로 극심한 통증과 대소변 장애 등에 시달리다가 우울증이 발병했고 그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살했다고 봄이 타당해 B씨의 사망과 상병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B씨는 2015년 2월부터 사망할 때까지 사타구니와 항문 주변에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고 대소변 장애가 있어 기저귀를 사용했는데 의사로부터 이를 치료할 수 없고 오히려 통증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설명을 들어 B씨로서는 참기 어려운 통증과 대소변 장애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심한 절망감과 무기력감,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B씨가 요양기간 중 우울증에 대해 정신과적 진료를 받지는 않았으나 통증이 심해진 이후부터 자주 우울감을 호소하며 수면장애에 시달린 것으로 보이고 사망 무렵에는 심리적으로 극도의 불안정 상태를 보이는 등 우울증이 의심되는 증상을 보였다”며 “진료기록감정의는 B씨가 자살하기 전 사고로 입은 척추손상으로 주요 우울장애를 앓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 B씨의 자살과 이 사건 상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의학적 소견을 제시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B씨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고 이와 다른 전제에서 원고 C씨의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 청구를 거부한 피고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은 위법하다”며 “원고 C씨의 청구는 이유 있어 인용한다”고 판시했다.

한편 근로복지공단은 이같은 1심 판결에 불복, 항소를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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