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수암 선임연구위원

지난달 서울시는 서울의 시민아파트로 거의 마지막 남은 남산자락의 회현제2시민아파트를 철거하지 않고 예술인들을 위한 ‘주거와 창작을 겸할 수 있는 공유공간’으로 리모델링한다는 발표를 했다. 문화예술인들의 주거비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장기 임대주거와 창작공간 역할을 하는 중심 허브공간으로 2020년까지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회현제2시민아파트는 1970년 지하1층 지상 10층 1개동 12평 규모의 352세대로 건축됐다. ‘ㄷ자’ 주거동의 형태에 지형에 따른 7개의 출입구를 가지고 있는 건축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아파트다. 2004년 11월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았고, 2006년 보상계획공고에 의해 주민동의 방식으로 정리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철거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총 352세대 가운데 8월 말 현재 250세대가 이주를 완료한 상태이며, 이주를 원하지 않는 주민들의 경우는 구조안전보강과 리모델링을 시와 입주자가 공동부담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1965년에 건설된 동대문아파트의 경우는 대한주택공사에서 건설한 6층, 양복도의 중정을 가진 초기의 중정형아파트로서 1990년대의 양복도·중정형 아파트의 모델이 된 아파트다. 종로구에서는 동대문 아파트를 공동주택 지원사업 지원 대상으로 선정하고, 구에서 90%, 주민들이 보수비용의 10%를 부담한 민·관협약형태로 공사가 이뤄졌다고 한다. 2015년 6월 건축적인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보수공사를 통해 서울시의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이와는 달리 1969년에 건설된 정릉 스카이 아파트는 4층 5개동 140세대로 건설됐으나, 안전진단 결과 D등급과 E등급을 받아 2008년 3월에 1개동이 철거됐으며, 나머지 4개동은 현재 철거예정이고 공공임대주택 정비사업으로 재정비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서울시는 1997년부터 1969~1971년에 지은 시민아파트 32개 지구 433개동 1만7050호를 매입 철거하고 대지를 공원이나 주민복지센터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일환으로 기존의 시민아파트는 모두 철거됐다.

1971년 건설된 옥인시민아파트의 경우는 주민의 자발적인 합의에 의해 리모델링을 실시한 사례로 순환형 리모델링과 더불어 구조체와 같은 안전을 위한 증·개축공사는 1개 업체가 실시하고, 외장과 내장, 개인 설비는 개인들의 책임 하에 시행한 2단계 리모델링을 추진한 전무후무한 사례다.

1970년 와우아파트의 붕괴시기에 건설 중이었던 당산시범아파트는 골조만 건설한 상태에서 공용배관만 있는 화장실을 제외하고 민간에게 분양해 입주자가 외장과 내장, 전용설비공사를 실시, 444호가 전부 다른 내·외부공간과 형태를 구성하고 있었다. 자발적인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거주자 참여를 통한 자신의 거주공간을 만들어가 거주자 참여형 시공으로 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예다. 이외에도 시민아파트, 공공아파트, 민간아파트 등 가운데는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많은 사례들이 있었으며, 당시의 생활과 변용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의 선구에는 1930년에 건설된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인 충정아파트가 있다. 가장 오래된 아파트 자체로서도 민간아파트지만 보존의 가치는 충분히 있으리라 본다. 비록 행촌아파트, 종암아파트 등이 최초라는 이름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린 지금 동대문 아파트와 회현제2시민아파트의 보수공사를 통한 유지와 사용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안전하지 않고 보존의 가치가 없어서 철거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고, 보기 싫은 낡은 건축물로 치부할 수도 있다. 보다 많은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건축 후 30년만 지나면 재건축을 하기 위해 애를 쓰는 많은 아파트를 볼 수 있다. 특히 민간아파트의 경우에는 유지와 철거·재건축사이에는 사유재산의 경제적인 측면이 우선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아파트를 모두 단순히 철거만 하는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 시대의 중요한 건축물로서 의미를 가지는 아파트에 대해서는 비록 사유재산이라도 어떤 방식이든지 기록물로서 남길 필요도 있다. 비록 안전상의 문제로 철거를 하더라도 도시의 기억으로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남길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것은 단순한 기록으로서가 아니라 생활양식의 일부분으로서, 사진과 모형으로, 일부의 요소의 흔적으로서, 나아가 변용과 사용의 흔적으로서 교훈으로 남길 수 있도록 한 차원 높은 기록적 자산으로, 전시공간으로, 공공차원, 정부차원, 학회차원에서 작은 지원이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 최초의 아파트’, ‘이런 아파트가 있었다’ 정도의 차원을 벗어나 의미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회현제2시민아파트의 유지보수와 사용 같은 사례는 앞으로도 증가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아파트관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