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 층간소음' <2> / 표승범 공동주택문화연구소 소장

표승범 공동주택문화연구소 소장

“잠시 눈을 감고 아주아주 먼 옛날을 상상해 본다”

지금처럼 공부 잘하고 스펙 좋은 사람이 출세하는 시대가 아니라, 단지 몸 건강하고 용감한 사람만이 사냥에 성공해 가족과 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시대엔 모두가 동굴에 모여 살았다. 어두워진 저녁, 누군가는 사냥도구를 손질하고, 누군가는 벽에 낙서를 하고, 누군가는 우는 아이를 달래고, 누군가는 코를 골며 잠에 빠져 있다.

이사 갈 빈집에 들어가면 유독 소리가 크게 울리듯이 동굴에서는 더욱더 소리가 크게 울린다. 부족단위로 무리 생활을 하던 구석기인들은 이런 시끄러운 동굴에서 어떻게 생활을 했을까. 아마 지금 우리가 느끼는 층간소음보다 훨씬 큰 소음이 부족의 무리가 함께 살던 동굴에서는 매일매일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시끄러워 잠을 못 자겠다며 동굴 밖으로 나가 잠을 잤을까. 아마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간 당장 맹수의 공격에 죽임을 당했을 테니까. 당시의 구석기인들에게 그런 소리는 소음이라기 보단 혼자가 아니라 무리와 함께 있다는 안도감을 들게 하는 소리였을 것이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

이렇듯 소음은 절대적인 것만은 아니다. 아름답고 고상한 클래식 음악도 누군가에게는 소음일 수 있으며, 엄청 시끄러운 팝 음악도 누군가는 자장가로 들릴 수 있다. 그렇다고 소음은 상대적인 것이니 무조건 이해하라고 할 수만은 없다.

아파트라고 하는 공동주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산업혁명 이후 도시로 몰려드는 노동자를 수용하기 위해서였다. 즉, 집단수용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주택의 최초 개념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 쾌적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임시로 편리하게 거주할 수 있도록 시작된 기숙사 개념이다. 유럽이 근대화를 이루고 복지국가로 이행하면서 가장 먼저 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기숙사형 공동주택을 헐거나, 5층 이하 목조 구조가 기본인 소규모 아파트로 대체한 것이다. 그런 아파트마저도 서민이나 독신자, 이주 노동자를 위한 공동주택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럽에서 없애기 시작한 아파트를 왜 이렇게 많이 짓기 시작한 것일까?
서울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사람들의 수용과 경제부흥의 주역 토목건설공사 때문이다.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으면서도 건설경기 활성화로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대규모 아파트 건설은 대한민국의 근대화에 지대한 역할을 해왔다.

예전엔 안 들렸던 층간소음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나기 시작한 것일까?
얼마 전 지방의 한 오래된 목욕탕을 갔다가 벽 선반에 놓인 오래된 브라운관 TV를 보고는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어렸을 적 금성 마크가 찍혀 있던 흑백 브라운관 TV를 보던 시절, 큰맘 먹고 구입해 거실 제일 좋은 자리에 놓이게 된 골드스타 마크가 선명한 컬러브라운관 TV. 그 TV로 보았던 첫 장면은 최초의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의 귀환 영상이었다. 초록색 잔디 사이 회색 활주로를 달리던 하얀색 콜럼비아호. 그 선명한 컬러 TV의 기억은 한참이 흐른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그랬던 그 컬러 브라운관 TV를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금 본 순간, 처음으로든 생각은 ‘아니 저걸로 예전엔 어떻게 TV를 봤을까’였다.
이처럼 우리의 눈, 코, 입, 귀 모든 감각 기관은 그동안 너무나 예민하게 길들여졌다. ‘지지직’거리던 단파 라디오로 듣던 음악은 스테레오를 넘어 5.1 채널, 7.1 채널의 서라운드 입체 음향으로 발전이 됐으며, 한 끼 때우던 식사는 맛집을 찾아 전국을 누비는 시대가 됐다.

그동안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어떤 발전이 이뤄졌을까?
우리의 감각기관이 발달한 짧은 기간에 비해 우리가 사는 건축물인 아파트는 그만큼 빠르게 바꿀 수가 없다. 즉, 스마트폰이나 자동차 바꾸듯이 쉽게 바꿀 수가 없기 때문에 층간소음을 포함한 많은 공동주택의 갈등은 본격적인 시작을 맞이하게 됐다.

다음 시간엔 제한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만든 아파트의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바벨탑은 인류 최초의 공동주택 분쟁으로 붕괴되었다?’란 제목으로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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