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복지를 만나다 <12>

 

 

 

프랑스는 일찍이 주거복지를 위한 정책을 펼쳐왔다. 사회주택 비율은 전체 주택 중 17%에 달한다. 5%가 채 되지 않는 우리나라로서는 부러운 숫자다. 거기다 임대료 보조 제도는 폭넓게 적용돼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외국인도 받을 수 있다. 소시민의 주거권 보호를 위해 긴급 상황에서는 임대료 상한제를 실시하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주거권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권리로 규정하고 어느 계층도 소외되지 않도록 꾸준히 실현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이 있기까지는 사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파리 콜레라(Le Petit Journal, 1912). 수많은 사상자를 낸 콜레라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파리(Paris)’는 만원이다
‘서울은 만원이다’ 1966년 동아일보 연재로 인기를 모았던 소설의 제목이다. 이촌향도의 물결이 이어지던 서울은 그때 이미 만원이라며 도시의 용량을 초과한 사람의 수에 힘들어 했다. 소설이 나온 1966년 서울의 인구는 380만 명이었다. 50년이 지난 2016년 현재 서울의 인구는 960만명 정도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서울은 계속해 주택 문제로 몸살을 앓았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이유이기도 하다.

급격한 도시화는 프랑스 파리에서도 있었다. 산업혁명 이후 인구는 도시에 집중됐다. 주택에 대한 소요도 증가했으나 공급은 따라주지 않았다. 노동자들의 주거환경은 열악했고 1832년과 1849년 유행한 콜레라에 의해 파리에서는 각각 2만명에 가까운 사망자를 냈다.

처참한 결과에 선량한 박애주의자들이 사회주택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고댕, 돌퓌스, 므니에 등 민간 기업가들은 노동자들을 위한 주택을 지었다. 이들의 노력은 사회의 호응을 얻었고 주거 문제에 대한 국가 개입의 필요성 또한 대두됐다. 1890년 사회주택 공급을 위한 최초의 회사가 설립됐고, 이후 사회주택 공급을 위한 다양한 법령이 제정돼 사회주택의 대량공급이 이뤄질 수 있었다.

임대료 통제와 주거비 보조
프랑스에는 아직 우리에게 없는 임대료 상한제도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인플레이션과 함께 임대료는 급격히 상승했다. 프랑스 정부는 비상사태에 따라 임시방편으로 임대료를 통제했다. 이때 시행된 임대료 통제는 지금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파리 시장은 임대료 상한제를 실시해 인상기준 임대료보다 비싼 월세로는 방을 내놓지 못하도록 하기도 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임대료 통제를 완화함에 따라 임대료는 다시 상승했다. 프랑스 정부는 임차인들을 위해 주거비 보조 제도를 도입했다. 처음에는 2자녀 이상의 세대에만 지원됐으나 점차 진화해 개별 세대의 다양한 경제적 여건을 고려해 만들어졌다. 주택 소유·임차 여부, 가족구성, 수입 정도, 주거비용 등을 기준으로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계산한다.
 

판자촌(마르빌, 1858). 도심부에서 철거가 진행되며 변두리에는 수많은 판자촌이 생겼다.

베송(Besson)법 : 주택에 대한 기본권 보장
프랑스의 주거 지원이 긴 역사를 바탕으로 포괄적으로 이뤄지고 있기는 하나 최저소득계층이 계속 배제되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는 1990년 당시 주택부 장관의 이름을 딴 일명 ‘베송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주거권을 ‘모든 사람이 적정한 주택에 거주할 수 있는 권리’로 규정하며 소외계층을 위한 주거정책방향을 제시했다. 최저주거기준 이상의 주택에서 자신에게 적절한 수준의 임대료를 지불하며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이 세워졌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연합한 광범위한 계획에 따라 ‘주택연대기금’이 만들어져 저소득계층의 임대료에 대한 지원도 보다 원활히 이뤄졌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프랑스 주거복지의 역사에 비하면 우리의 역사는 짧기만 하다. 사회주택의 비율은 현저히 차이 나고, 주거비 보조 제도는 2000년 기초생활보장제도에 포함돼 운영되다 지난해에야 분리돼 확대 운영되고 있다. 임대료 상한제의 시행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택’을 중심으로 그동안 개발 위주의 정책이 추진돼 왔기에 ‘주거권’에 대한 개념조차 갖춰지지 못하고 있다. 도시의 주택 문제는 결국 전 세계적으로 비슷하다. 도시인구의 과밀에 따른 저소득층의 열악한 주거환경. 주택 정책에 대한 프랑스의 오랜 역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참고가 될 만하다.

우리관리 주거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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