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라는 도화지 위에 그린 7월의 수채화

▲ 위에부터 향과 열매가 풍성한 꽃사과, 나리, 제멋대로 못생긴 참외를 닮았지만 향긋한 향을 가진 모과열매, 보는 것만으로도 새콤달콤한 살구, 줄기와 잎사이에 검은색 주아가 있는 참나리
아파트 곳곳에 찌는 듯한 더위가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들리는 장마 소식이 반갑다. 논바닥이 쩍쩍 갈라질 만큼 비가 오지 않더니 일주일에 한 번씩은 지나가던 구름 사이로 간 보듯 단비가 내리니 말이다. 여전히 부족하기는 하나 단비가 내린 아파트 곳곳에서는 축 늘어져 있던 나뭇잎들에 생기가 돌고 색이 한층 푸르러졌다.

4, 5월에 꽃을 피웠던 나무들은 어느새 작은 열매를 맺고 태풍과 장마를 잘 견뎌낸 열매들은 하루하루 단단해지고 튼실하게 자라난다. 산수유, 앵두, 보리수는 작고 붉은 열매를 맺으며, 꽃사과, 살구나무, 복숭아, 모과는 조금 더 크고 단단한 열매를 맺는다. 산딸나무는 꽃과 열매가 모두 특이해 꽃과 열매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그중 꽃사과는 산사라고도 하며 보통 사과에 비해 작고 익었을 때 신맛이 강하다. 꽃사과의 꽃은 새색시의 볼처럼 붉고 얌전하며 특히 향이 좋다. 봄꽃의 대명사인 살구꽃에서 자란 살구는 살구나무의 열매로 매실과 유사하며 열매는 둥글다. 또 털이 많고 7월에는 황색이나 주황색으로 익는다. 노랑과 주황의 중간색을 살구색이라고 하고 살구의 열매를 보기만 해도 한쪽 눈이 감길 만큼 친근한 과일이다. 익은 살구는 새콤달콤한 맛을 내고 씨앗도 여러 가지 효능이 있어 널리 이용되기도 한다.

모과나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 중 하나다. 모과나무의 수형과 나무껍질을 보는 재미와 모과열매의 향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예로부터 모과나무는 사람을 세 번 놀라게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먼저 못생긴 열매의 생김새를 보고 놀라고, 두 번째 못생긴 생김새와 어울리지 않는 향긋한 향기에 놀라고, 마지막으로 향긋한 향기와 달리 먹어보면 그 맛이 너무 떫어 놀란다고 한다. 모과는 줄기의 껍질이 단단하고 무늬가 아름다워 여러 나무 가운데서도 찾기가 쉽다. 길이생장과 부피생장을 할 때 묵은 껍질들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면서 얼룩덜룩한 무늬를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가을이 되면 초록색 모과 열매가 노랗게 익으면서 향긋한 향기가 아주 좋다. 산딸나무는 익숙하진 않지만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하다. 새하얀 꽃받침이 나무 위로 피어 마치 흰나비들이 나무 위에 앉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산딸기 모양의 열매가 나무 위에서 익어간다. 산딸기처럼 생긴 열매는 익으면 식용이 가능하며 그 맛도 달콤하다. 가을에는 산딸나무의 단풍을 보는 즐거움도 준다.

여름 꽃은 작게 소리 없이 피어나는 봄꽃에 비해 크기가 크고 한층 색이 화려해진다. 특히 나리와 능소화는 여름을 대표하는 꽃이다. ‘능소화’는 금등화라고도 부르는데, 옛날에는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지에 흡착근이 있어 벽이나 담장에 붙어서 올라가면서 자란다. 꽃이 크고 주황색이며 꽃이 시들지 않고 툭하고 떨어진다. 수술의 끝에 갈고리모양의 꽃가루가 있는데 눈에 들어가면 심한 통증을 일으키니 조심해야 한다. 능소화에는 전해 내려오는 슬픈 전설이 있다. 옛날 굴권에 복사꽃처럼 붉고 고운 뺨에 자태도 아리따운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는데 임금의 사랑을 받게 돼 빈의 자리에 오르며 궁궐 어느 곳에 처소가 마련됐다. 그러나 임금은 소화를 찾아오지 않았고 임금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소화는 상사병에 걸려 담장 곁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쓸쓸히 죽어갔다. 그 후 모든 꽃과 풀들이 더위에 시들어 갈 무렵 주홍색의 꽃이 담장을 덮으며 넝쿨을 따라 곱게 피어났고 이 꽃을 능소화라 불렀다고 한다. 이야기 속 소화가 생각날만큼 능소화는 보는 이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한 꽃이라는 생각이 든다.

능소화만큼 화려한 여름 꽃이 바로 나리꽃이다. 나리꽃은 백합과로 원추리나 백합과 꽃의 모양이 유사해 구별이 쉽지 않다. 나리류 중 꽃이 하늘을 바라보는 하늘나리, 중간을 바라보면 중나리, 중나리 중 털이 있으면 털중나리, 잎이 난처럼 길게 뻗쳐 있으면 원추리, 땅을 바라보고 꽃잎이 완전히 뒤로 젖혀 있는 것은 땅나리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꽃이 큼직하고 키가 크며 줄기와 잎 사이에 검은색 주아가 있는 것은 참나리라고 한다. 아침 이슬을 한껏 머금고 있는 나리는 색이 더욱 진하고 선명하다.

이처럼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은 이른 아침과 햇살 뜨거운 오후 그리고 노을 진 저녁마다 자연은 3색(色)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오는 주말에는 온 가족이 아파트 곳곳에 피워낸 꽃들을 보며 이야기꽃을 피워보면 좋을 듯하다. 또 아이들은 가끔씩 귀를 쫑긋 세워 나무들이 하는 수다를 듣고 어른들에게 들려주기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길 바란다.

글/사진 생태안내자 임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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