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주변에 숨어있는 가을의 흔적들…

▲ 배롱나무
시끄럽게 울어대던 매미소리는 여름과 함께 흔적을 감추고 여기저기 울긋불긋한 단풍과 탐스럽게 열린 열매들이 가을의 한가운데를 지나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한낮의 청명한 하늘과 가을단풍의 우아함에 가던 걸음을 멈춰 한참을 가을의 정취에 빠져들곤 한다.

때로 차갑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쓸쓸함도 밀려오고 낭만에 빠져보기도 하지만 가을만큼 마음이 풍성한 계절이 또 있을까?

계절을 인생에 비유할 때 여름을 청춘이라 한다면 가을을 중년에 비유하기도 한다. 청년의 열정을 잃어버려 허전하지만 인생의 여유로움과 넉넉함을 가진 나이이기 때문이다. 바로 단풍과 낙엽이 그러하다. 단풍의 우아함과 기꺼이 떨어질 줄 아는 낙엽의 용기를 가졌으니 말이다.

사실 단풍은 여름에 높았던 기온이 낮아지면서 여름동안 열심히 광합성작용을 담당했던 엽록체의 생성이 줄어들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엽록체 안에는 엽록소라는 초록색 색소가 있는데 단풍은 나뭇잎이 광합성 기능을 상실할 즈음 초록색 색소가 분해되면서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단풍은 대부분의 활엽수에서 나타나며 우리는 대표적으로 노란 은행나무와 붉은 단풍나무를 떠올린다. 하지만 조금은 다른 색을 내는 나무들도 있다. 붉나무는 주황색으로, 화살나무는 진분홍색으로 물들기도 한다. 단풍은 온도가 낮아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온도가 빨리 낮아지는 북쪽지방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단풍놀이는 설악산을 필두로 속리산을 거쳐 내장산을 따라 내려가면서 즐기는 것이 좋다. 단풍이 든 후에 나무는 나뭇잎으로 인한 에너지 손실을 막기 위해 나뭇잎을 마르게 하고 잎자루나 잎몸의 끝부분에 ‘이층’이라고 하는 특수한 세포층을 형성해 잎을 떨어지게 한다. 그것을 우리는 ‘낙엽’이라고 부른다. 낙엽은 일조량 즉, 단풍과는 달리 햇빛을 얼마나 오랫동안 쬐느냐에 따라 그 시기가 결정된다. 그래서 같은 나무라도 그늘진 쪽에 있는 잎에 비해 가로등 조명 아래에서 빛에 오랫동안 노출된 잎의 경우 떨어지지 않고 오래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봄에 새잎은 가지의 가장자리 끝부분부터 나기 시작하는데 떨어질 때는 그것과는 반대로 나무의 몸통부분 근처에 있는 나뭇잎부터 떨어진다.

그래서 마지막 잎새는 항상 가지의 끝부분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잎자루가 떨어진 자리를 자세히 보면 자국을 남기는데 그것을 ‘엽흔’이라고 부른다. 아파트와 도로변에서 자라고 있는 가로수의 경우 잎이 넓고 풍성한 것들이 많은데 낙엽이 되어 떨어지게 되면 많은 양과 바람에 날리는 특성 때문에 처리가 쉽지 않다. 낙엽에는 질소, 인산, 칼슘 등으로 이뤄져 있어 식물의 뿌리를 튼튼하게 한다. 그래서 낙엽은 나무 아래에서 분해돼 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대부분 시멘트와 아스팔트 바닥이어서 낙엽이 그 자리에서 분해될 수 없기 때문에 수거해 처리하게 된다.

가을에는 단풍이나 낙엽뿐만 아니라 가을 열매들을 보는 즐거움도 빼 놓을 수 없다. 아이, 어른 구별할 것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탐스런 열매를 보며 채집하고자 하는 욕구와 열매를 채집했을 때의 즐거움이 있는 듯하다. 뒷산 참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를 주워 껍질을 까고 바구니에 널어 말리는 할머니나 좀작살나무의 보라색 열매를 나뭇잎으로 만든 그릇에 담아 소꿉놀이 하는 아이들이 그러하듯.

가을에 열매 맺는 나무 중 가장 대표적인 나무는 산수유나무다. 산수유나무는 아파트에서 가장 먼저 봄이 왔음을 알리는 대표적인 봄나무이기도 하지만 빨간 열매는 가을의 풍성함을 제대로 보여주는 나무라고 할 수 있다. 산수유 열매는 몸을 튼튼하게 하고 체력을 회복시키는 강장제로 쓰이기도 하는데 그래서 예전에는 산수유나무 몇 그루만 가지고 있으면 수확한 열매를 판 돈으로 자녀를 대학까지 보낼 수 있다고 해 대학나무라고 부르기도 했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을 열매 중에는 산수유 열매 외에도 유독 붉은 색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스스럼없이 새들의 먹이가 되기를 자처한다. 아니나 다를까 새들의 먹이가 된 열매들은 새를 매개로 해 씨앗를 퍼트리고 새로운 생명을 틔워내는데 죽음으로 더 많은 생명을 살린다는 자연의 이치가 가히 놀라울 따름이다.

가을이 되면 박새나 직박구리와 같은 새들이 자주 목격되고 붉은색 가을 열매가 그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에게도 무해한 것은 아니다. 특히 주목의 경우 씨를 감싸는 열매는 달콤하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씨는 독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가을 열매 중에는 독을 품은 열매도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함부로 먹지 못하도록 주의해야 한다.

밤이 되면 찬 바람이 더욱 매서운 요즘이다. 찬 바람을 탓하지 않고 나뭇잎은 스스럼없이 푸르름을 포기하고 자신의 색깔을 바꿔 나무가 살게 한다. 그리고는 뿌리의 양분이 되어간다. 이는 때때로 다른 이와의 경쟁과 욕심 때문에 가진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우리에게 주는 자연의 따스한 교훈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할까,
떨어지기 아쉬워 가지 끝에서 떨고 있는 마지막 잎새?
아니면 내일을 위해 당당히 나무뿌리의 양분이 되어가는 낙엽?

생태안내자 임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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