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택정책에 있어서 중요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주택’이 아니라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주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다.

주거는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과 ‘사람의 삶’을 모두 담는 개념이다. 과거에는 주택정책이 키워드였다면 지금은 주거정책, 주거복지 등이 더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과거에 아파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사항은 신규분양이 어디에서 이뤄지고 어느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얼마나 올랐나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월세난이나 아파트 관리 문제 등이 주요한 관심 사항으로 부각되고 있다. 바로 얼마전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내 집 하나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내 집 갖기를 마다하고 전세살이를 더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집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급격하게 변화했는지 알 수 있다. 관리문제의 중요성은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투자의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사는 곳’으로서의 의미가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에 관리 문제는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아파트 관리와 관련된 문제와 비리가 지금까지 없었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아파트 관리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은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의 공간’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낮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최근에 아파트 관리문제가 문제시 되는 것은 이웃과 더불어 사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파트 관리비리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국회의원들의 입법발의가 잇따르고 있다. 그동안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던 아파트 관리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점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아파트 관리문제에 대한 관심이 관리비리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부 아파트에서의 관리비와 관련된 비리문제를 들어 모든 아파트 단지가 다 그런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보다는 전 국민의 절반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어떻게 하면 살기좋은 주거공간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아파트 관리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아파트 관리가 잘 이뤄지기 위해서는 입주민, 관리사무소, 입주자대표회의, 지자체 등의 적절한 역할분담과 협조가 필요하다. 여러 이해관계자 중에서 입주민은 가장 중요하면서 관심도는 낮은 집단이다. 입주민은 아파트의 사용자로서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자이고 적절하고 투명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가장 큰 피해자가 됨에도 불구하고 관리문제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높지 않다.

아파트 관리문제에 입주민들의 대한 관심과 참여를 촉구하기 위해서는 입주민들이 관리에 쉽게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아파트단지에서 입주민들은 불편한 사항이 있을 때 관리사무소에 전화하는 방법 이외에는 관리에 참여하는 방법이 부재한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아파트 단지 홈페이지는 유명무실하게 관리되고 있고 유용한 정보도 올라와있지 않다.

아파트 관리가 물리적 공간에 대한 관리뿐 아니라 생활관리가 중요하게 포함돼야 하고 아파트에 거주하는 다양한 연령층의 다양한 요구를 수렴하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입주민들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촉구할 것이 아니라 참여가 가능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저절로 관심이 높아지도록 만들어야 한다.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이용 가능한 홈페이지의 구축도 그런 방법의 하나이다.

아파트 단지 홈페이지를 국토교통부의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이나 서울시의 ‘공동주택 통합정보마당’과 링크해 관련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홈페이지 구축과 관련된 기술적 서비스를 지자체에서 지원해주는 것도 필요하다. 입주민들이 관리문제에 관심을 가질수록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입주민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높아질 수 있다.

지금처럼 관리문제를 비리로만 바라보면 결국 입주민과 관리주체, 입주자대표회의간 불신의 벽이 높아질 것이다. 이해관계가 되는 주체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선행될 때 좋은 정책이나 제도도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정책과 제도는 그 기저에 문화적 여건과 토양이 마련됐을 때에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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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현숙 연구위원
국토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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