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관리 분쟁조정위 활성화 위해 법령 보완 ‘절실’

법령 맞게 분쟁조정위 조례 제정한 지자체 절반도 안돼…처리실적 ‘1건’
실효성 있는 대안 마련 시급…지자체, 분쟁해결 위한 의식전환도 필요

부산시 A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최근 부녀회와 알뜰시장 수익금 귀속주체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대표회의는 갈등의 골이 깊어져 소송으로 이어질 조짐이 보이자 주택법령에 규정된 지자체의 공동주택 관리 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해결을 신청하려 했으나 이러한 계획은 무산됐다. 이 아파트의 관할 기초지방자치단체에는 아직까지 공동주택 관리 분쟁조정위 관련 조례가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모습은 분쟁을 겪고 있는 다른 단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지난 2005년 12월 주택법 개정을 통해 ‘기초지자체에서 조례 제정을 통해 공동주택 관리 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명시했음에도 법령에 맞게 관련 조례를 제정한 곳은 48.9%로 절반도 안되는 실정이다.
또 조례를 제정했어도 분쟁조정을 처리한 실적은 인천시 부평구 1곳을 제외하면 전무하다.
이에 지자체의 공동주택 관리 분쟁조정위원회 조례 제정 등 운영실태를 알아보고, 활성화 방안은 없는지 모색해 보자.

⊙ 현행 법령 맞는 조례 절반 안돼
정부는 지난 2005년 12월 기초지자체에서 조례 제정을 통해 공동주택 관리 분쟁조정위를 설치토록 주택법을 개정했다.
그동안 임의기구에 불과하던 ‘공동주택 관리 분쟁조정위원회’를 의무적으로 설치토록 한 것이다.
하지만 관련 법령이 개정된 지 2년 반이 지났지만 본지가 최근 전국의 기초지자체 231곳(제주특별자치도 포함)을 대상으로 ‘공동주택 관리 분쟁조정위원회 관련 조례제정 유무 및 운영현황’을 조사한 결과 조례를 제정한 지자체는 전체의 52.4%인 121곳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는 구 공동주택관리령에 따라 조례를 제정한 후 개정하지 않은 8곳이 포함돼 현행 주택법령에 맞게 조례를 제정한 지자체는 113곳으로 전체의 48.9%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결과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21개구에서 조례를 제정했고, 인천지역은 현행 법령에 맞게 조례를 제정한 곳이 8곳(80%)으로, 경기지역은 31개 구·군 가운데 83.9%인 26곳으로 각각 나타나 서울·수도권의 조례 제정률은 평균 83.3%로 조사됐다.
또 대구는 8개 구·군이 모두 조례를 제정했고, 대전과 광주가 각각 80%였으나 부산은 37.5%, 울산은 0%로, 광역시의 조례 제정률은 평균 56.4%에 그쳤다.
하지만 강원(44.4%), 충북(58.3%), 충남(37.5%), 경북(13%), 경남(5%), 전북(42.9%), 전남(22.7%), 제주(0%) 등 타지역의 평균 제정률은 28.6%에 그쳐 수도권이나 광역시에 비해 훨씬 낮았다.

⊙ 지자체, 분쟁조정에 ‘소극적’
지자체에서 이와 같이 관련 조례를 제정했더라도 지금까지 전국에서 분쟁조정을 처리한 실적이 1건일 정도로 지자체가 분쟁조정에 소극적이다.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법령에 따라 관련 조례를 제정해도 분쟁조정위를 설치하지는 않고 있다.
또한 일부 기초지자체에서는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공동주택 관리비 지원에는 적극적인 반면 분쟁조정에는 소극적이다.
서울 K구의 경우 지난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관내 아파트에 총 1백억원이 넘는 비용을 지원했고, 올해도 34억원의 예산을 확보했지만 아직까지 공동주택 관리 분쟁조정위 관련 조례를 제정하지 않고 있다.
또 지난해까지 총 2백29억여원을 지원하고 올해도 10억원을 계획해 가장 많은 관리비를 지원한 서울 S구도 사정은 비슷하다. 법령 개정이 2년 가까이 된 지난해 11월에서야 관련 조례만을 제정했을 뿐이다.
이처럼 기초지자체에서 분쟁조정에 소극적이다보니 분쟁조정위를 개최해 분쟁조정을 시도한 곳은 지금까지 인천시 부평구 밖에 없는 상황이다. 부평구는 지난 5월 피선거권이 제한된 전(前) 동대표의 자격 유무를 놓고 비상대책위와 입주자대표회의간 분쟁을 겪고 있는 D아파트 건을 처리했다.
부평구를 제외하면 그동안 지자체에서 분쟁조정 처리실적은 전무하다.
오히려 일부 지자체에서는 아파트에서 분쟁조정을 신청하려 해도 소송을 통해 해결하라고 유도하는 등 분쟁조정 접수를 기피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 A아파트는 최근 입주민간 대표회장 자리를 놓고 서로 자신이 회장이라며 분쟁을 겪어 관리업무에 큰 차질을 빚자 구에 분쟁조정을 신청하려 했으나 민사소송을 통해 해결하라는 이유로 신청을 거부당했다.
이처럼 기초지자체에서 관련 조례 제정을 미루거나 조례에 따라 분쟁조정위가 설치됐더라도 분쟁조정을 기피하고 있어 오히려 아파트 분쟁이 심화되고, 소송이 증가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전국 법원에서 판결선고나 조정, 화해 등 확정된 사건 가운데 본지가 무작위 추출해 분석한 결과 아파트 관련 사건이 1760건으로, 지난 2006년(1226건)에 비해 43.6%나 늘었고, 2005년(581건)과 비교하면 3배가 넘게 증가했다.
서울시 N아파트 관리소장은 “입주민간 의견대립으로 국토해양부에 질의하면, 국토부는 지자체로 미루고, 지자체는 다시 단지로 돌려보내 사소한 문제가 소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분쟁 해결에 도움을 줘야 할 정부와 지자체가 오히려 분쟁이 소송으로 이어지도록 방치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 관련 법령 제도 보완 절실
공동주택 관리 분쟁조정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관련 법령과 제도의 보완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무법인 새빌 주규환 변호사는 “지자체에서 공동주택 관리 분쟁조정위 설치 관련 조례제정을 미루거나 분쟁조정위가 있더라도 조정을 꺼리고, 분쟁당사자도 분쟁조정위보다 소송을 선호하는 것은 분쟁조정위에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라며 “아파트 분쟁과 소송이 급증하는 점을 감안하면 주택법령을 개정해 분쟁조정위에 강제성을 두는 등 실효성 있는 대안 마련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또한 분쟁조정위는 공정성과 객관성이 생명이지만 현행 법령의 규정은 오히려 이를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주택법 시행령 제67조에 따르면 분쟁조정위는 10인 이내로 구성하되, 분쟁이 발생한 공동주택 대표회의와 관리주체가 각각 추천하는 자 2명 등 총 4명을 포함토록 하고 있다.
문제는 공동주택 분쟁의 대부분이 대표회의나 관리주체가 연관돼 있는데도 분쟁당사자인 대표회의와 관리주체가 조정위원 최대 10명 중 4명을 추천한다면 상대방은 불리할 수밖에 없어 분쟁조정위 결정을 신뢰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 M아파트 부녀회장은 “알뜰시장 수익금의 귀속주체를 놓고 대표회의와 분쟁을 겪으면서 분쟁조정위에 신청하려 했지만 현행 법령에 조정위원 10명 중 4명이 대표회의와 관리주체가 추천한 자로 규정돼 있어 조정신청을 포기했다.”며 “현행 분쟁조정위제도는 ‘빛 좋은 개살구’나 다름없다.”고 토로했다.
인천시 A아파트 관리소장도 “분쟁이 발생한 단지의 대표회의와 관리주체가 추천한 자는 참고인 등으로만 참여토록 하고 조정위원은 객관적으로 분쟁을 인식해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위촉되도록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함께 최근 법령 개정에 따라 내년부터 국토부에 설치 예정인 ‘하자심사 분쟁조정위’를 ‘공동주택 관리 분쟁조정위’와 일원화하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아파트 공동체위원회 곽 도 위원장은 “아파트 하자만을 위해 국토부에 분쟁조정위를 설치 운영하겠다는 정책은 잘못됐고, 분쟁조정 취지에도 어긋나므로 국토부에 하자와 함께 단지 내 다양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분쟁조정위를 설치토록 법령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경기도 안산시 N아파트 관리소장은 “공동주택 관리 분쟁조정위원회도 현행 환경분쟁조정위원회처럼 중앙과 광역지자체별 지방분쟁조정위를 구분, 설치토록 한다면 기초지자체에 설치한 것보다 실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분쟁해결 위한 의식전환 필요
공동주택 관리 분쟁조정위원회 활성화를 위해서는 이처럼 법령과 제도 보완 못지 않게 정부와 지자체가 분쟁해결에 적극 나설 수 있는 의식전환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서울시 A아파트 동대표 K씨는 “지자체에서 분쟁조정위를 설치토록 법령이 개정된 지 2년 반이 지나도록 조례조차 제정하지 않고, 조례가 있더라도 분쟁조정 신청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현재 분쟁조정위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자체에서 아파트 분쟁조정에 대한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므로 정부와 지자체가 분쟁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분쟁해결에 적극 나설 수 있는 의식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분쟁조정위 설치 운영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함께 분쟁예방 등도 중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군산대 법학과 고준기 교수는 최근 ‘공동주택 주거문화 개선방안’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공동주택 분쟁은 해결보다 예방이 중요하다.”며 “하지만 발생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쟁조정위 설치 운영에 대한 홍보 강화, 분쟁해결을 위한 전문인력 양성과 확보, 관련 공무원이 자질향상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개발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공동주택 관리 분쟁조정위 활성화 방안>
⊙ 관련 법령·제도 보완
- 분쟁조정위에 강제성 등 실효성 있는 대안 마련
- 분쟁이 발생한 공동주택의 관리주체와 대표회장이 추천한 자는 조정위원에서 제외하는 등 분쟁조정위 구성원 조정
- ‘하자심사·분쟁조정위’를 ‘공동주택 관리 분쟁조정위’와 일원화
- 중앙환경분쟁조정위처럼 중앙과 광역지자체에 분쟁조정위 설치
⊙ 정부와 지자체, 분쟁해결 위한 의식전환 필요
⊙ 공동주택 분쟁 해결보다 예방에 역점
⊙ 분쟁조정위 설치·운영에 대한 홍보 강화
⊙ 분쟁해결 위한 전문인력 양성과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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