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맞는 올바른 애견문화 정착 시급

▲ 경기도 용인시 LG빌5차아파트 애완견 동호회가 단지 내 애완견 문제 근절을 위한 대책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 애완동물의 대명사인 개.
(사)한국애견협회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15∼20%가 집에서 개를 기르고 있다. 협회가 추산하고 있는 전국 애견은 약 3백50만 마리이며, 애견인은 7백만명에 이른다. 이 수치대로라면 5∼6세대당 한 마리씩 개를 기르고 있는 셈이며 그 비율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애견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아파트에서도 마찬가지. 저녁시간 애완견을 데리고 아파트 단지 내에서 산책을 즐기는 입주민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단지 주변 상가에도 애견미용실이나 동물병원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늘어나고 있는 애완견과 애견인에 비해 애견문화는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아파트에서는 소음과 배설물 등을 둘러싼 입주민간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 법령에는 세대 내에서 가축을 사육하고자 하는 경우 관리주체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아파트 관리주체가 세대 내 애완동물 사육을 강제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입주민들의 자발적인 시민의식 발휘가 무엇보다 요구되고 있다.

◈ 애완견 사육문제로 입주민간 갈등
지난달 대전에서는 개가 짖는 소리에 잠을 깬 주민이 개 주인을 찾아가 항의하자, 이에 격분한 개 주인이 항의한 사람을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평소에도 애완견 사육 문제로 잦은 말싸움을 벌여 온 것으로 조사됐다.
비록 이 살인사건이 아파트에서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평소 아파트에서도 애완견 사육 문제로 갈등이 잦아 입주민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경기도 고양시 J아파트 관리사무소에는 매일 비슷한 내용의 민원이 접수되고 있다. 엘리베이터와 복도에 쌓인 애완견 배설물을 치워달라는 민원이다. 이러한 민원이 접수되면 관리소에서는 환경미화원, 경비원은 물론 일부 기계실 직원까지 동원해 즉시 수거작업을 벌인다. 그러나 다음 날이면 아파트 내 곳곳에 배설물이 쌓이고, 입주민들은 생활의 불편함을 또다시 호소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대전시 중구 H아파트에서는 최근 애완견 짖는 소리로 인해 입주민간 큰 다툼이 발생했다. 업무상 낮에 잠을 자야 하는 입주민과 집에 개를 혼자 놔두고 출근하는 입주민이 다툰 것. 개 짖는 소리에 격분한 입주민은 개를 키우는 옆 세대 입주민을 찾아가 항의했으나 개선되지 않자 급기야는 옆 세대의 창문을 부수고 말았다.
서울 강남구 K아파트에서는 비교적 몸집이 큰 ‘시베리안허스키’종 두 마리를 키우는 세대로 인해 최근 비상반상회가 열렸다. 몸집이 큰 개로 인해 놀란 노약자와 임산부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애완견 사육이 사실상 허용된 경기도 성남시 모 아파트의 입주민은 “전염병 예방주사를 맞았는지 여부를 알 수 없는 개가 단지 내 놀이터에 방치된 경우도 목격했다."며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은 자유지만 만일 이웃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대로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시민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1.9%가 이웃집 애완동물로 인해 소음이나 냄새 등의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또한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 등 주택가 어린이놀이터 555곳의 모래를 검사한 결과 2.9%에 해당하는 16곳에서 개회충란이 발견됐다. 개회충란은 인체에 들어갈 경우 복통이나 시력장애 등의 해를 끼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아파트에서도 애견인구는 크게 증가하고 있지만 이웃을 배려하는 애견문화의 정착은 아직까지 요원한 상태다.

◈ 애완견 사육금지 사실상 불가능
주택법 시행령에는 각 시·도의 관리규약준칙을 통해 ‘가축을 사육하거나 방송시설 등을 사용함으로써 공동주거생활에 피해를 미치는 행위’에 대해 입주자가 관리주체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각 시·도의 관리규약준칙에 따라 관리규약을 제정한 여러 아파트가 세대 내 가축 사육 행위에 대해 관리주체의 동의를 얻도록 규약 내 명시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상당수 아파트 관리소장들은 세대 내 가축사육 행위에 관여하기는 매우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서울시 송파구 K아파트 관리소장은 “세대 내 애완동물 사육 여부에 대해 관리주체가 전체 세대를 통제하기는 불가능하다.”며 “벌칙조항이 있지만 이 마저도 입주민들이 준수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경기도 고양시 J아파트 관리소장도 “세대간 애완동물 문제로 갈등이 생겼을 경우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중재하고 있을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현재 관리주체의 동의에 따른 애완동물 사육 조항은 유명무실한 상태”라고 말했다.
서울시 영등포구 M아파트는 입주 시기인 3년 전부터 세대 내 동물 사육을 일체 금지하는 조항을 관리규약 내 명시했으나 현재 조항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
이 아파트 대표회장은 “관리주체의 동의가 없으면 세대 내에서 동물을 키우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어길시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제도가 있으나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며 “상당수 입주민들이 애완견 사육금지에 대해 크게 반발하면서 조항 삭제를 요구하고 있고 개를 키우는 세대도 급증하고 있어 제도를 계속 시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보완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애완동물 사육규정 등 시행
이러한 가운데 애완견 사육 입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관련 규정을 제정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한 아파트의 사례가 눈길을 끈다.
경기도 용인시 LG빌5차아파트는 3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 2월부터 애완동물 사육에 관한 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애완동물 사육자는 단지 내의 ‘애완견 동호회’에 가입해 동호회에서 정한 시행세칙(이웃 피해시 사육 중지, 청결유지, 소음유발 방지 등)을 준수해야 한다.
이 아파트는 동호회의 적극적인 활동이 애완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동호회는 각 회원 서로간에 애완동물 시행세칙을 준수할 것을 유도하는 것은 물론 매월 두 차례씩 단지 내에서 환경미화활동을 벌이고 있어 주변 아파트의 관심은 물론 단지 내 입주민들의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 입주민들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한 동호회는 단지 내 150개 애완견 사육세대를 대상으로 ‘올바른 애견문화’ 내용이 담겨 있는 동호회지를 발행하고 있으며, 타 단지를 대상으로 사례 전파에 나서고 있다.
이와 함께 서울시 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 또한 입주민들의 자발적인 동호회 활동으로 애완견 관련 문제를 해결했다.
애완견으로 인한 입주민간 다툼이 잇따르자 이 아파트 애완견 사육자들은 동호회를 구성하고 새로운 애완동물 문화 창출에 적극 나섰다. 기초복종훈련 실시는 물론 위생관리, 소음 차단 등에 힘쓴 결과 애완견 관련 민원이나 다툼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이 아파트 관리소장은 “동호회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단지 내에서 애완동물로 인한 분쟁이나 갈등이 전혀 발생하지 않고 있다.”며 “입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애완견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 경기도 군포시 산본금강2차아파트는 애완동물 사육자는 위, 아래 3개층 세대의 동의가 있어야만 사육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 성숙한 시민의식이 문제 해결 열쇠
아파트 내 애완동물 사육으로 인한 입주민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입주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서라벌대학 애완동물학과 최지용 교수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애완동물로 인한 입주민 피해와 주민간 갈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사육자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며 “이웃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시민의식의 기본”이라고 지적했다.
(사)한국애견협회 김용현 사무장은 “아파트 등에서는 사육자 본인이 인내심과 책임감을 갖고 애완동물을 훈련시켜야 할 것”이라며 “사육자는 가축을 산책시킬 때에는 반드시 목줄을 매는 것은 물론 배변봉투 등 배설물을 즉시 치울 수 있는 도구를 지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견협회는 최근 인터넷 등을 통해 아파트 등 주거지역에서의 올바른 애견문화 정립을 목적으로 ‘페티켓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애완견의 특성과 훈련법을 익혀 소음을 예방하고 배변습관을 들일 것 ▲각종 전염병 예방주사를 반드시 접종시키고 어린이놀이터 출입을 금할 것 ▲아무리 짧은 거리라도 이동시에는 목줄을 사용하거나 이동용 가방에 넣어 주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할 것 ▲심하게 짖을 때에는 성대제거수술을 검토할 것 등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한편 아파트 주거문화개선 시민운동본부 홍성표 회장은 “애완동물 사육으로 인한 이웃간 분쟁이 사회 전체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며 “현 주택법 시행령에 정한 가축사육 규정은 애매모호하므로 애완동물 등록제를 시행해 명쾌하지 못한 관련 규정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작권자 © 아파트관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