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주차난 갈수록 심각…정책적 지원 절실

▲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 차량이 빼곡히 주차돼 있다.
아파트에서 매일 같이 치르는 전쟁이 있다.
바로 ‘주차전쟁’이다. 1세대 2차량 이상 보유 세대가 늘면서 아파트 단지 내 주차공간 부족으로 인한 입주민간 분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지은 지 10년 이상된 아파트의 경우 주차공간이 세대당 1면조차 확보되지 못해 출퇴근 시간대에 입주민간 다툼을 목격하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은 현상이 돼 버렸다.
지난달 17일 전북 전주의 한 아파트에서 이례적인 사고가 났다. 이 아파트 앞을 지나던 행인이 갑자기 무너진 아파트 담벼락에 깔려 부상을 입은 것이다. 이 사고는 이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입주민 최모 씨가 자신의 차량을 가로막고 있던 차량을 빼내기 위해 차를 벽 쪽으로 밀던 과정에서 발생했다. 최씨는 “단지 내에 주차공간이 부족한 상태다 보니 차량 앞에 누군가 횡주차를 해 놨다.”며 “차량을 옮기려고 밀다가 차량이 벽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전주시 G아파트(160세대에 주차면수 50여대)도 턱없이 부족한 주차공간 때문에 매일같이 입주민간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아파트 입주민들은 “횡주차는 물론이고 겹겹이 주차된 차량들 때문에 아침에 출근도 못할 정도”라며 “이로 인한 접촉사고도 빈번하다.”고 호소했다. 관리주체도 더 이상의 민원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처럼 심각한 아파트 주차난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 아파트 주차문제 심각
울산시가 지난해 말 관내 아파트 1천세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주거문화 실태조사 결과 아파트 단지 내 개선을 원하는 시설 1위로 주차시설이 꼽혔다.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단지 환경도 주차장 확보가 1위로 나타났다.
부산지역 아파트 관리소장과 입주민들도 지난해 부산발전연구원이 조사한 공동주택 리모델링 의식조사 결과 공용부분의 리모델링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으로 실시해야 할 부분으로 주차장 확대를 지적했다.
부산지역은 이미 지난 2003년 준공된 지 20년 이상 아파트 310개 단지를 대상으로 시가 실시한 주거환경 실태 조사 결과 3분의 1이 넘는 88개 단지의 주차장 확보율이 80%를 밑돈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특히 이 가운데 25개 단지는 주차공간이 세대수의 60%에도 못 미쳐 주변 도로의 불법 주차를 유발하는 등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또한 전국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실시하는 아파트 입주민과의 간담회에서 매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민원이 바로 ‘주차문제’다.
경기도 여주읍 H아파트는 주차공간 부족으로 이중·삼중 주차도 모자라 아파트 입구 도로변까지 주차장으로 변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인근의 K아파트와 H아파트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제는 단지 안을 차지하고 있는 재활용 처리시설이나 음식물쓰레기 수거 공간마저도 아쉬운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의 주차문제는 입주민들의 보행권 침해 문제, 단지 경관 문제, 소방차 진입 문제 등 갖가지 문제점들을 양산하고 있다.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입주민은 “주차난이 집값 하락을 초래하고 있다.”며 “우리 단지의 경우 겹겹이 주차된 차량 때문에 준공 연도가 비슷한 인근의 아파트 단지와 집 값 차이가 많이 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서울의 C아파트는 최근 단지 내의 테니스장을 배드민턴장으로 변경해 주차공간으로 사용할 계획을 세우고, 최근 입주민 동의를 구했다.
준공된 지 17년째인 이 아파트는 세대수가 660세대지만 주차면이 387면에 불과해 입주민 민원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 아파트 관리소장은 “현행법상 어린이놀이터나 도로, 조경시설 등을 용도변경해 주차장으로 활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용도변경만으로 늘어나는 주차대수를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테니스장을 배드민턴장으로 변경하면 그나마 저녁 시간대라도 일부 주차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데 동대표들의 의견이 일치했다.”며 “어떻게 보면 편법이고, 입주민 가운데 구청에 신고라도 하면 행정조치가 내려질 수도 있지만 사정이 오죽 심각하면 이런 방법까지 고려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이달부터는 주차장법이 강화돼 장애인 주차공간도 전체의 2∼4%로 늘려야 한다.
그러나 용도변경을 통해 주차공간을 늘리려는 아파트의 경우 주차장 확보에 따른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다. 과천의 한 아파트는 설치비용 부담 때문에 주차장 설치계획이 무산됐다.
과천시 관계자는 “우리 시의 경우 기존 조례로도 아파트 단지 내의 주차장 설치 보조금을 100%까지 지원할 수 있다.”며 “그러나 공동주택 보조금 지원조례 제정으로 아파트와 지자체간 부담비율이 70대 30으로 확정되자 결국 아파트에서 30에 해당하는 비용을 부담하지 못해 지원금 지급이 무산됐다.”고 말했다.

⊙ 정책적 지원 필요
현행 주택법 시행령 제47조 제1항 관련 별표3의 규정에 따르면 지난 94년 12월 30일 이전에 사업계획승인을 얻어 건축한 2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은 입주자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 조경시설 및 단지 안의 도로, 어린이놀이터 시설을 각각 전체 면적의 2분의 1 범위 내에서 주차장 용도로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테니스장과 같이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에서 정한 의무 설치 운동시설의 경우는 주차장으로 용도변경이 금지돼 있다. 주차난을 겪고 있는 아파트의 입주민들은 “테니스장은 사실상 소수의 입주민들만이 이용하고 있는 운동시설”이라며 “이런 운동시설을 주차장과 같이 입주민들에게 절실한 용도로 변경하지 못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입주민들이 수차례 구청을 방문해 호소해 봤지만 구청 관계자도 사정은 뻔히 알지만 법령 때문에 행위허가를 내 줄 수 없다는 일관된 답변만 하고 있다.”며 “노후 아파트의 사정을 고려, 관련 법을 완화해 아파트 단지 내의 심각한 주차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의 C아파트는 이번에 단지 내의 도로, 화단 등을 주차장으로 용도변경할 계획이지만 지자체의 보조금 지원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장기수선충당금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아 주차면 확보비용을 전액 관리비로 부과해야 할 형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할 구청 관계자는 “공동주택 관리 지원조례가 제정되긴 했으나 내년에나 예산확보가 가능할 것 같다.”며 “주차장 보조금 지원이 지원조례상 보조금 지급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심의위가 특별히 필요하다고 의결하지 않는 한 이에 대한 보조금 지원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 지자체의 경우 공동주택 지원조례를 제정, 시행하며 단지 내의 공용시설물에 대한 유지보수 비용을 지원토록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주차시설 확보에 대한 보조금 지급은 미미한 실정이다. 현재까지 송파구 등 일부 지자체의 경우만 주차시설 확보에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아파트도 주차난 해소를 위한 별도의 보조금 지원사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단독주택 등을 중심으로 실시하고 있는 주차보조금 지원 사업에 아파트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 ‘내집 주차장 갖기 사업’을 통해 지난 97년 1월 이전에 건축된 국민주택 규모 이하의 아파트 가운데 주차공간이 부족해 인근 주택가의 주차난에 영향을 주는 아파트에 한해 설치 보조금을 지원하는 시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단독주택이나 다세대·다가구 주택 위주로 사업을 진행, 사실상 유명무실한 시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아파트의 주차난 해소를 위해 보조금을 지원할 방침이지만 아직까지는 주차문제가 더 심각한 단독주택이나 다세대·다가구 주택 위주로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며 “현재까지 관내 아파트 가운데 주차장 보조금 지원 혜택을 받은 곳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관계자들은 아파트에도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관련 조례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울산 중구 관계자는 “노후한 아파트의 주차문제가 상당히 심각해 아파트의 지원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며 “설치 보조금 사업에 아파트도 포함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을 시에 건의했다.”고 말했다.

⊙ 관공서 등과 주차 ‘상부상조’
최근 들어 아파트 단지의 주차문제 해결로 관공서 등 지역 내의 주차공간을 아파트와 공유해 사용하는 방법이 호응을 얻고 있다.
대구 동구 B아파트는 협소한 주차공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02년부터 인근 동대구세무서와 주차장을 함께 사용해 효과를 거두고 있다. 또 T아파트는 반대로 북구청 직원들을 위해 주차장을 개방함으로써 상부상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아파트 인근의 관공서나 은행, 대형 할인마트 등 시설물의 주차장을 개방해 입주민들에게 사용토록 하는 방안도 현실성 있는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시설물 보수비 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면 상부상조의 주차 문화가 확산될 것이라는 반응이다. 실제로 서울시는 ‘그린파킹’ 사업을 통해 이같은 시책을 펼치고 있지만 아직까지 홍보 부족과 시설물 소유주의 의식 부족 등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 관계자는 “지역 공동체 활성화와 인근 입주민들의 편의 제공이라는 시설물 소유주의 의식만 뒷받침된다면 시 차원에서 얼마든지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입주민 ‘공동체 의식’ 필요
지은 지 10년 이상된 아파트의 경우 아파트 입주민들과 관리주체의 주차공간 확보 노력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늘어날 차량을 수용할만한 충분한 공간을 마련하기란 역부족이다. 이에 따라 이에 걸맞는 입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경상남도는 1세대 2차량 등 아파트 단지 내의 차량 급증에 따라 최근 주요 시책 중의 하나로 ‘아파트 단지 내 세대별 전용 주차장 지정 운영’ 제도를 펼치고 있다.
도는 이를 위해 창원지역 일부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전용 주차장 지정 운영제를 시범 운영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도 관계자는 “입주민 대다수가 세대와 가까운 장소에 주차하려다 보니 관리주체 또한 주차 지정제나 순환제 등 다각적인 방법을 모색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아직까지는 입주민들의 공동체 의식 수준이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며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상당수의 아파트가 주차차량 규제를 위해 1세대 1차량 초과 세대에 일정 금액의 주차비를 징수하고 있다. 2차량 이상 보유자에 대해 어느 정도의 주차문제 유발금을 부담시켜야 한다는 취지다.
아파트 관리주체들은 “업무용 차량 등 차량을 2대 이상 소유함으로써 입주민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경우 단지 외부에 주차공간을 확보하는 등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지만 아직까지는 입주민들 사이에 이런 의식 자체가 많이 부족한 것 같다.”고 토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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