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들의 신뢰로 한 아파트서 25년간 근무

아파트 관리직은 그동안 이직률이 높은 직업으로 손꼽혀 왔던 게 사실이다. 직종이 갖는 중요성에 비해 다소 낮은 수준의 급여와 입주민들의 불신 팽배, 열악한 근무환경 등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이러한 가운데 사용승인시부터 재건축까지 만 25년에 가깝도록 한 아파트에서 관리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서울시 동대문구 장안시영2단지 최중호 관리소장의 사례가 귀감이 되고 있다.
최중호 관리소장은 지난 79년 10월 이 아파트에 관리주임으로 입사하여 계장, 과장을 거쳐 관리소장에 이르기까지 각 직책에 맞는 관리업무를 두루 수행해 오며 입주민들과 고락을 같이 했다.
현재 재건축으로 인해 이주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이 아파트에서 입주민들의 이주를 돕고 틈틈이 재건축조합측에 인계할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 최중호 관리소장을 만나봤다.

☞ 25년간을 한 단지에서 근무한 경력이 큰 화제가 되고 있는데.
대한주택관리사협회 동대문지부 회원들은 물론 타지역의 관리소장들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고 있다. 대부분 입주부터 재건축까지 어떻게 관리업무를 수행했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 같다.
이 아파트도 타 단지와 같이 근무환경이 열악하다. 그러나 투명함을 기본으로 관리소장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결과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러간 듯 하다.
그동안 시설물 노후화의 급속한 진행과 입주민간 이해관계 대립 등 갈등현상 등 타 단지와 비슷한 현상들을 끊임없이 겪어 왔으며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수많은 보수공사가 이어졌다.
지금 회상해보면 관리업무의 진행과정 속에서 입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게 된 것이 재산처럼 느껴진다.
장안시영2단지는 이제 없어지겠지만 평생 잊지 못할 직장으로 기억될 것 같다.

☞ 입주민간 갈등으로 관리업무 수행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는데.
어느 단지나 마찬가지로 이 아파트도 80∼90년대에 공동체 문화와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해 입주민간 갈등과 대립이 있었다.
입주민들은 의견이 서로 상충될 때마다 관리소장을 비롯한 관리주체에서 입장을 밝히길 바랐으며 자신들의 편에 서 주길 요구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항상 관리자의 입장에서 문제점을 파악하려고 노력했으며, 사적인 감정을 일체 배제하고 입주민들이 객관적 입장에서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85년 난방방식 전환공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일반 아파트에서 찾아보기 힘든 연탄보일러는 지난 85년까지 이 아파트 대부분 세대의 난방방식이었다.
이에 주거환경을 개선하자는 취지로 도시가스 난방을 도입하자는 입주민들의 의견이 제시됐다. 그러나 비용 등을 이유로 연탄난방을 지속하자는 입주민들의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이후 주민간 갈등이 심화되면서 어느 쪽 의견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관리주체에 대한 불신이 양측으로부터 제기됐으며 의견 대립과 불신감이 극도에 치닫고 있었다.
이에 당시 관리직원들은 입주민들간에 활발하게 토론의 장을 진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본연의 관리업무에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이 아파트는 최초의 입주민간 대화를 통한 민주적 절차에 따라 도시가스 설치공사가 원만하게 진행되면서 갈등현상이 사라졌고, 객관적 입장을 유지한 관리주체에 대한 입주민들의 평가가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 입주민들이 재건축이 완료되면 다시 관리소장으로 부임해달라고 한다던데.
재건축이 완료되고 입주가 시작되면 다시 관리소장 업무를 수행해 달라는 입주민들의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어떠한 결정을 내리진 못했으나 입주민들의 의견이므로 신중히 검토할 생각이다.
아파트 관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입주민들의 신뢰를 형성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주민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바라는지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난 79년부터 약 10년간 2천여 세대의 입주민들을 파악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실시한 결과 입주민들이 투명한 관리를 최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지난 90년대부터 아파트 관리비 집행에 있어 예산제를 시행했다.
당시 예산제를 시행하는 아파트는 찾기 드물어 어려움을 겪었지만, 단지 내 필요한 시설물 보수와 입주민 편의를 극대화하기 위한 각종 사업에 대해 사전에 기획·분석하고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다.
또한 대표회의측에 자체감사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해 3개월마다 관리비 감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지난 25년간 이 아파트에서는 회계사고가 단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점들이 입주민들의 신뢰를 얻게 한 원동력이다.

☞ 장기근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관리소장의 이직률이 높은 것은 열악한 근무환경과 낮은 보수 등 여러 가지에 원인이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고효율 관리서비스 실현을 위해서는 관리소장 등 관리직원들의 장기근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입주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면서 효율적 관리서비스를 펼치기 위해서는 아파트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해야 하지만 아파트는 단지마다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고 입주민들의 성향 또한 매우 다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각종 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적절한 비용을 통해 효율적으로 시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관리소장들의 이직률이 낮아져야 한다.
물론 급여 등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입주민들의 의지와 협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관리자로서의 원리원칙 준수 ▲업무수행에 있어서 주인의식 발휘 ▲아파트 단지 내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파악 등에 최선을 다한다면 근무환경은 반드시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현준 기자> june@ap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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